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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전통 문화예술의 향기]꼭두, 亡者의 외로운 길 함께 하는 길동무죽음에 대한 두려움, 예술적 상상력 녹아 있어

김우철 기자
2014.06.26·4분 읽기·조회 40


 

 

전통사회 상장례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생전에 쓰던 물건을 묘소에 함께 부장했다. 

 

이를 명기(明器)라고 하는데, 묘소에 부장하기 위해 만든 동물, 사람, 각종 그릇, 악기, 기구 등을 총망라한 말이다.

 

특히 꼭두[인형]는 명기 중에 전통문화로서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꼭두는 우리 전통의 독특한 미의식을 담은 우리문화유산이다.

 

죽은 사람 영혼이 가야할 외로운 길을 함께 갈 길동무로서 부모나 자식, 친구를 죽음으로 떠나보내야만 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꼭두 형상을 통해서 '유·불·도·무'가 습합된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신앙과 죽음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미지의 세계, 즉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주술적, 예술적 형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꼭두가 입고 있는 옷 모양은 고려 및 조선 복식사 연구에 실증 자료가 되고 있다. 보통 약 10cm 내외의 크기에 다양한 표정을 하고 있으며, 시기별 각 계층의 인물 모습을 특징적이고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잡귀를 쫓고 망자를 위로하는 광대·악사 꼭두, 망인이나 안내자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탄 꼭두, 시중을 드는 시종 꼭두, 칼·창 등 무기를 들고 잡귀를 쫓는 무사 꼭두, 등천왕생을 기리는 용·주작 꼭두 등이 있다.

 

 

이 꼭두의 사용은 상당히 오래전부터이다. 고대 중국에서 순장을 하는 대신에 용(俑, 허수아비)을 무덤에 부장하였다. 진시황릉의 토용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인물이나 동물 등 형상물을 부장하는 풍습은 최근 백여 년 전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이미 삼국시대 이후 무덤에서 많은 토우들이 출토됐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것은 대부분 실물을 작게 본뜬 모형 자기(磁器)들이 많다. 병, 잔, 접시, 단지, 편호, 향로, 연적, 기마인물, 여인상, 용문양 등이 출토됐다.

 

또한 자기뿐만 아니라 나무를 조각한 꼭두 역시 드물게 출토되고 있다. 주로 환조(環彫)로 되어 있고 당채로 채색됐다. 그리고 짚으로 만든 꼭두 역시 상당수 출토됐다.

 

<세종실록>에 국장(國葬)에 쓰이는 명기에 대한 도해와 함께 품명, 자료, 용도가 자세히 나타나 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거마(車馬), 복종(僕從), 시녀(侍女) 등을 나무로 깎아서 생시의 물건과 함께 넣는다는 언급과 관직에 따라 부장물 수량의 차등을 명시했다. 관직 사품(四品) 이상은 30사(事), 오품 이하는 20사, 서민(庶民)은 15사이다. 그러나 영조조에 순장 풍습이 염려되어 꼭두의 부장이 장례 절차에서 사용을 엄격히 금지했다.

 

일반적으로 꼭두 용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공연을 위한 용도,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용도, 그리고 명기로서 용도가 있다. 현재 수집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꼭두는 명기로서의 꼭두이다.

 

시신을 운반하기 위한 상여(喪輿) 중심부 몸채 아랫난간, 윗난간, 용마루에 부착됐던 것들이다. 상여에 부착됐던 것이 대부분인 이유는 땅속에 매장됐던 것이 부식되어 소실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용한 꼭두는 묘지에서 하관(下官)한 뒤에 상여와 함께 불태웠으나 나중에는 상여를 보관하여 재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상여막에 꼭두를 보관하여 재사용했다.

 

현대사회에서 꼭두가 부착됐던 상여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전통사회 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근거리 선산에 모시는 상례가 거의 없어진 요즘은 영구차가 상여를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꼭두를 놓는 상례문화도 사라지게 됐다. [사진 및 자료 제공 동숭아트센터 꼭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