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字論語> ‘博施濟衆’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다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자공이 말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어진 것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해 걱정하셨다.”(子貢이 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한대 何如하니잇고. 可謂仁乎잇가. 子曰 何事於仁이리오. 必也聖乎인저. 堯舜도 其猶病諸시니라. 「옹야」 28)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다. 세상을 보거나 삶을 사는 것은 모두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다른 사람도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따라서 세상의 중심은 세상의 인구수와 같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아니므로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다.
중심은 자신에게서 남으로, 남에게서 자신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때와 장소에 따라 중심 이동을 잘 하는 것이 삶의 도리가 된다. 학문을 연마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하는 것은 중심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남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서는 중심이 수시로 변한다.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에 가장 적절하게 행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중지도(時中之道)다. 시중지도는 어느 순간이든 가장 적절하게 행할 수 있는 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시중지도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므로 일반 사람들은 시중지도를 행하기 어렵다.
자공이 공자에게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어 구제할 수 있다면 어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그런 사람은 인자(仁者)의 경지를 넘어 성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라서 요임금과 순임금도 어렵게 여기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위정자에게 세상의 중심은 백성에게 있다. 추위에 떨거나 굶주리는 백성이 없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백성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위정자의 도리다. 즉, 위정자의 통치는 백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백성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세상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고 그것이 극에 도달하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기업을 잘 운영해서 돈을 벌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를 중심에 두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따라서 소비자를 위해 무한서비스를 생각하는 것이 생존의 지름길이다. 자신이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기업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중심을 잘 파악해야 순리에 맞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스승은 제자를 중심에 두고, 부모는 자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중심을 인정하고 깊이 받아들일 때 세상은 조화를 이룬다. 내가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다른 중심을 인정하는 것이 박시제중이다. 그동안 박시제중은 어진 마음으로 어진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대중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중심으로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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