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賢들의 멋이 깃든 亭子이야기 44披香亭, 백성을 위한 善政의 맑은 향기 퍼져 호남 으뜸가는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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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태인면 태산로에 위치한 피향정(披香亭)은 현재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정자에 오르면 하연지(下蓮池)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보물 제2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로부터 남원의 광한루(廣寒樓)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 칭하고 피향정은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고 하여 정자의 앞과 뒤에 피향정의 편액과 호남제일정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정자 내부에 조항진(趙恒鎭)의 낙관이 찍힌 편액이 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태인 고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부친인 둔촌(屯村) 민유중(閔維重)이 딸의 시비(侍婢)로 삼았고 왕후로 간택되자 함께 입궁했다.
태산(泰山)은 백제 때 대시산군(大尸山郡)으로, 신라 때 태산(太山)을 고쳤다. 또한 의현(仁義縣)은 백제 때 빈굴현(賓屈縣)으로, 신라 때 무성(武城)으로 고쳤다. 고려 때 고부군(치어 태산군의 영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때 인의로 고치어 고부군(古阜郡)에 붙였고 감무(監務)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9년(1409)에 두 고을을 합하여 태인(泰仁)으로 고쳐 현(縣)으로 삼았다.
고을의 별칭으로 태산(太山), 무성(武城), 인의(仁義)로 불렀다. 현감을 두었다. 동쪽으로 임실(任實), 남쪽으로 순창(淳昌), 서쪽으로 부안(扶安), 북쪽으로 김제(金堤)와 인접해 있다. 현재 태인과 고부가 합쳐져 정읍(井邑)이 되었다. 현재 정읍에는 정읍향교(井邑鄕校), 고부향교(古부향교), 태인향교(泰仁鄕校)가 있다.
태인향교 남동쪽 정읍시 태인면 태산로에 이름난 정자가 있으니 피향정(披香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신라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스스로 서쪽에서 배워 얻은 바가 많아 고국으로 돌아와 장차 자기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쇠퇴해가는 나라의 정국은 의심과 시기가 많아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마침내 외직으로 태산군 태수가 되었다”라고 하여 정자를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고운집(孤雲集) 가승(家乘)에 “태인에 연못이 있는데, 선생이 본군(本郡)의 수재(守宰)로 있을 적에 이 못을 파고 연(蓮)을 심었다”라고 했다.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李志宏)이 중건하고, 현종 때 현감 박숭고(朴崇古) 확장 중건, 숙종42년(1716) 때 부안의 변산(邊山)에서 재목을 베어 세웠다. 태인현지(泰仁縣志)에 “피향정의 연못이 있어 이름났다. 정자 동북쪽의 상연지는 원래부터 있었으나, 지금의 연못인 하연지는 영조 20 때 새로 판 것이다“라고 했다.
심암(心庵) 조두순(趙斗淳)의 피향정기(披香亭記)에 “태인은 호남의 빼어난 땅이며 피향정은 이름난 정자이다”라고 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이곳의 연지(蓮池)에서 고운을 생각한 시를 남겼다. “할계(割鷄)하던 당일에 맑은 향기를 뿌리니[割雞當日播淸芬] 탱자나무와 가시나무에 난새가 깃들었다고 사람들이 말하였네[枳棘棲鸞衆所云] 천년 전 읊던 마음을 어디에서 찾을꼬[千載吟魂何處覓] 일만 줄기 연꽃 속에 일만 개의 고운이로다[芙蕖萬柄萬孤雲]” ‘소 잡는 칼을 닭 잡을 때 사용 한다’는 우도할계(牛刀割雞)는 큰 재능이 아주 작은 데에 쓰임을 비유한 것으로, 고운이 고국인 신라로 돌아와 장차 평소의 포부를 펴 보려했으나 크게 쓰이지 못하고 외직으로 나감을 비유했다.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은 점필재의 시에 차운했다. “지인이 떠나간 후 남긴 향 만 움켜쥐니[至人一去挹遺芬] 지팡이 짚고 노니신 곳 바로 여기였다네[杖屨曾聞此地云] 날 저문 삼산은 먼 길 바라봐도 아득하니[日暮三山迷遠望] 어디서 고운을 찾을지 알수 없네[不知何處訪孤雲]”
석천(石川)은 임억령(林億齡)은 “원량(申潛의 字)이 새로 땅에 묻혔고[元亮新埋地] 고운은 옛날에 하늘에 올랐네[孤雲舊上天] 못에 물만 남아 있어[空餘池水在] 흰 이슬은 가을 연꽃에 맺히네[白露滴秋蓮]”라고 시를 읊었다. 광해군 때 고운과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등을 향사하고 숙종 때 무성서원(武城書院)을 사액(賜額)하였다. 운양은 “그대 마주하고 길이 술을 올리나니[對君長進酒] 이 거울 속 하늘에 취하시구려[醉此鏡中天] 만약 시혼이 있느냐 묻거든[若問詩魂在] 일만 줄기 연꽃을 한번 쳐다보시구려[試看萬柄蓮]”라고 석천의 시에 차운했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은 “물 지키는 원앙새는 짝을 지어 쌍쌍 날고[護水元央兩兩飛] 잠자리는 다정스레 내 옷 위에 내려앉네[蜻蜒款款點行衣] 다정할사 태액지(太液池, 북경의 西華門 곁에 있는 연못으로 피향정 곁에 있는 못을 의미) 주변에 서성이는 나그네여[多情太液池邊客] 다리 옆에 말 멈추고 저물도록 서 있네[駐馬官橋盡落暉]”라는 시를 남겼다.
청음의 손자인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은 조부의 제영시를 차운하다. “가을 연못에 흰 이슬 몇 번이나 내렸던가[秋池白露幾回漙] 선조의 시 울며 읽다 홀로 난간에 기대었네[泣閱紗籠獨倚欄] 칠십 팔년 세월에 많은 감회 일어나니[七十八年多少感] 시든 연꽃 의구해도 빗소리는 차갑구려[敗荷依舊雨聲寒]” 또한 문곡은 “원량과 고운이 모두 앞뒤로 나오니[元亮孤雲共後先] 시산(詩山, 태인의 옛 이름)은 예로부터 명현으로 이름났지[詩山從古著名賢] 가을 연꽃 흰 이슬은 옛 그대로인데[秋蓮白露應依舊] 누가 멋진 시구로 석천의 뒤를 이을까[佳句何人繼石川]”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담헌(澹軒) 이하곤(李夏坤)도 “외로운 구름 냇가의 돌[孤雲与石川] 학 타고 하늘로 돌아갔네[駕鶴已歸天] 홀로 연못에 내리는 눈을 바라볼 뿐[獨來池上雪] 어디서 가을 연꽃 볼 수 있을까[何處賞秋蓮]”라고 석천의 시에 차운했다.
다산(茶山) 목대흠(睦大欽)은 “맑디 맑은 호수 안에 땅이 솟았고[淸絶湖中地] 명경 같은 허허로움은 하늘 속에 잠겼구나[虛明鏡裏天] 가을밤 베개 베고 자다 꿈꾸었더니[秋宵一枕夢] 연지절반에 서리가 덮고 있네[霜倒半池蓮]”라고 읊조렸다. 또한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인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는 “이 밤 임 만날 생각에 정자에 올라[此夜逢君處] 난간에 기대에 하늘을 바라보네[憑欄月上天] 나지막이 풍겨오는 사랑스러운 향기여[殘香猶可愛] 가을 기운에 저무는 저 연꽃에서 오는구나[秋氣在衰蓮]”라고 차운했다.
미산(眉山) 한장석(韓章錫)의 조부는 태인의 수령이었고, 부친은 장성부(長城府)를 다스렸는데, 정자에 올라 시를 지어 한양으로 보냈기에 차운했다. “동읍(桐邑, 관리가 선정을 베푼 고을)의 명성은 이미 옛날 일인데[桐邑風聲已昔年] 무성에 이어진 땅에 또 현가 소리 남아 있네[武城連壤又餘絃] 못 잊을 늙은 노송나무는 허리가 아름이 되려는데[難忘老檜腰將拱] 듣자니 새 연잎은 손바닥만큼 둥글게 자랐다네[聞說新荷掌許圓] 남국에서 편지 오고 구름은 높은 산 같고[南國書來雲似嶂] 굽은 연못에 봄 다 가고 물은 안개 같네[曲塘春盡水如煙] 작은 정자에서 추정(趍庭, 부친의 슬하에서 가르침을 받음)하는 꿈은 멀리 막혔으나[小亭遙隔趍庭夢] 흰 기러기가 시를 물고와 한양에 이르렀네[白雁銜詩到日邊]”
박광영 / 성균관 의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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