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

<四字論語> ‘學而不厭’ 학문을 싫어하지 않는다

편집부
2018.02.12·3분 읽기·조회 18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하게 기억하며, 학문을 싫어하지 않고, 사람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어찌 나에게 있겠는가?”(子曰 黙而識之하며 學而不厭하며 誨人不倦이 何有於我哉리오. 「술이」2)

 

어른들은 한결같은 말을 한다.

 

“너 잘되라고 공부하라는 거지, 배워서 남 주니?”

 

그렇다. 백 번 맞는 말이다. 배워서 남 줄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기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르는데 왜 모든 사람이 공부만하라고 외치는지 모르겠다.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때로는 옆길로 새는 것이 인생일진데 왜 공부에 목을 매는지 알 수가 없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배우고, 조금 자라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우고, 사회에 나가면 회사나 조직 같은 곳에서 배운다. 그러니 배움이란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다.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는 것이기에 때로는 놓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범생(?)이었던 공자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학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데 비하여 공자는 그 누구보다 배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논어』에는 공자의 호학(好學) 정신에 대해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스스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하였고, 열 집이 사는 작은 고을에 자신처럼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겠지만 자신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경우도 있다. 다른 것에 대해서는 겸손하던 공자가 학문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았다.

 

사실 공자에게는 뚜렷한 스승이 없었다. 공자는 물 먹는 하마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급기야 자신의 학문을 완성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부른다. 모든 인류의 스승이라는 말이다. 인류의 스승이 학문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 말이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도 통하는 것일까?

 

가끔 배움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난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젊어서는 알지 못했던 배움의 즐거움을 그들은 늙어서 알았다고 한다. 비록 젊었을 때보다 암기력은 떨어지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이 아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우애하며,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공부해야 한다. 실천에는 민첩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는 것이 공자의 학문이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자세로 연결되는 것이다. 스승이 없던 공자도 학문을 완성했는데, 스승도 있고 책도 많고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면서 학문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도 창피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