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넘어로 본 안자묘(安子廟)
좌측 건물은 안자기념회관이고, 그 뒤 삼문은 사당 내삼문이고, 우측 건물은 종가이다.
안자 초상화
종가
닫힌 대문이다.
안향(安珦)은 고려시대의 명신·학자로 호는 회헌, 시호는 문성공으로 경상도 흥주(오늘날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다. 1289년(충렬왕 15)에 정동행성의 좌우사낭중과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舉)가 되었으며, 이 해에 왕을 따라 원의 연경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자전서』를 보고 손수 책을 베껴 썼으며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서 돌아와서 주자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박사 김문정 등을 중국에 보내서 공자와 그 제자들의 조상을 기리고 제기·악기·경서 등을 구해오게 하는 등 고려 말기 유학 진흥에 큰 공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맨 처음 주자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주자학도로 보고 있으며, 죽은 지 12년째 되는 1318년(충숙왕 5)에는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왕이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1호선 의왕역에서 내려 동북 방향으로 약 2km를 걸어 부곡중학교를 지나 덕영대로를 만났다. 앞쪽에는 부곡체육공원이 있고, 그 뒤편 산기슭에 기와지붕이 보였다. 그 건물에 다가와 살피니 '안자(安子)기념관', 안자묘(安子廟)라는 묘정비가 눈에 들어왔다. 몇 년전 찾다가 못찾은 안자사당을 바로 찾았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종가로 추정되는 집에는 장독 등 생활 물품이 보여 주거하는 것으로 보였다. 비상벨을 누르고 "관람할 수 있나요? 수원향교 김용헌 장의입니다"라고 말했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좌측 전면에 팔작지붕 시멘트 건물이 안자기념회관이고, 그 기념회관 우측 뒤편에 사당이 보였다. 사당은 기념회관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사당 앞 내삼문과 묘정비는 멀리 보였다.
왜 이곳에 안자의 사당이 있을까? 궁금했다. 안자와 부곡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안자는 중국에서 주자학을 배우고, 많은 서적을 가지고 강화도 옆 교동도를 거쳐 입국했고, 그가 태어난 영주에 주세봉이 백운동서원을 짓고 주자학을 가르쳤다. 강화 교동도 아니고 영주도 아닌 이곳에 무슨 연유가 있을까?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종택을 이곳에 만들며 사당묘도 이곳에 세운 것이다.
"안향의 신위를 봉안한 안자묘(安子廟)는 원래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에 있었는데, 6.25전쟁 때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천동으로 옮겨졌다가, 1977년 의왕시 월암동에 안자묘와 종택을 건립하였다. 종부는 창원한씨로 김포 출신이다. 슬하에 5남매를 두었다. 월암동에 있는 종택, 안자묘, 사당은 모두 현 종손이 1970년대에 조성한 것이다."
"순흥안씨 문성공파 종가에서는 음력 9월12일에 안향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 종손이 북한에 있을 때는 오전 1시에 지냈으나 지금은 오전 11시에 지낸다"라고 한다. 올해 음력 9월12일(양력 10월22일) 제례에는 참례할까 한다.
안자묘 대문은 잠겨 있었다. 안자묘뿐만 아니라 거의 우리 선현 사당 문은 닫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은 선현의 신주를 다른 무엇보다 귀히 여겨 귀한 물건을 소중하게 대할 때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봄가을 제례를 올리고 삭망에 분향을 올리고 선현의 가르침을 본받고자 했다. 지금은 찾는 이도 없고, 찾아도 반겨 주는 이 없는 안자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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