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2575년 추기석전 D-22] 특집-기독교인 대통령도 참석하고, 무교 대통령도 매번 헌성금을 냈던 서울 문묘 성균관 석전(釋奠)
<span style="color: rgb(255, 0, 0);">“1954년 9월23일 봉행된 추계석전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 부부 동영상 첫 확인”<br>"현재의 이욱 수복 할아버지인 이완산 수복도 같은 영상 앞부분에 등장 ”<br>“박정희 대통령은 서거 직전인 1979년 추기석전까지 매번 금일봉 하사”</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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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영상역사관 홈페이지에서 '성균관'으로 검색하면 다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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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기록에 의하면, 1954년 당시는 김창숙 초대 성균관장이 재임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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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대성전으로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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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부부(오른쪽)와 이선근 문교부장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왼쪽)이 배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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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요 구경거리 중 하나인 석전을 보기 위해 많은 참례객들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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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산 수복이 선두에서 헌관 및 제집사를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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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를 맡은 유림(왼쪽 세 번째)이 우렁찬 목소리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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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는 다르게) 남성으로만 구성된 일무단과 악무단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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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무단이 원형이 훼손된 팔일무를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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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이 대성전 앞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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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성전 앞 배전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유림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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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인 1955년 10월12일 봉행된 추기석전에도 수많은 참례객들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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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9월29일 봉행된 추기석전에서 이완산 수복(맨 왼쪽)과 헌관들이 서립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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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직전인 1979년 추기석전에 금일봉을 하사한 내용이 당시 <유림월보>에 실렸다.
공자탄신 2505년이었던 지난 1954년 9월23일 오전 10시 서울 문묘 성균관 대성전에서 거행된 추계석전에 기독교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승만 대통령(李承晩, 1875-1965)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 등 부부가 참석한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이 확인됐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산하의 한국정책방송원(원장 이은우)이 운영하는 e영상역사관 홈페이지(https://www.ehistory.go.kr)에서 ‘성균관’이라는 용어로 검색하면 총 278건의 관련 내용이 보이고, 여기서 가장 오래된 자료는 ‘공부자 탄강(2505년)’이라는 제목으로 확인되는 대한뉴스 제46호로 1분 1초의 분량을 담고 있다.
해당 영상자료 아래의 지문에는 ‘공부자탄강(2505년) 9월23일, 성균관 대성전에서 공부자탄강 2505년의 기념식 거행’이라는 제목으로 ‘제례악 연주,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및) 내빈 다수 참석, 문교부장관, 성균관 부관장 등의 귀빈들의 사배 (및) 일반유림들의 제례’라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성균관 홈페이지(https://www.skk.or.kr)의 ‘커뮤니티’-‘자료실’-‘역대 성균관장’에 의하면 1954년 당시는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초대 성균관장이 재임 중이었으나 영상에서는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고, 헌관으로 소개된 ‘이 문교부장관’은 1954년 4월21일부터 1956년 6월7일까지 제4대 장관으로 재임했던 이선근(李瑄根, 1905-1983) 장관으로 확인됐으며 그는 이후 1957년 10월21일 성균관대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해 1960년 5월14일까지 재직했다. 또 다른 헌관으로 소개된 ‘김 성균관 부관장’은 누구인지 현재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경무대 직원과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성전 앞마당으로 입장한 이승만 대통령 부부는 지난 1997년 10월까지 있었던 배전(拜展)에 준비된 소파에 앉아 석전의 진행과 64명 팔일무단의 춤사위를 보며 악단의 우아한 제례악에 심취했고, 일반 유림들의 배례에 앞서 먼저 대성전에 올라 분향했다.
이 외에 이승만 대통령이 단독으로 대성전 앞에서 (누군지 아직은 확인되지 못한) 유림과 악수하며 대화하는 모습의 사진도 같은 곳에서 발견됐다.
국왕이나 왕세자, 또는 왕의 명을 받은 최고위직 정승들이 주관했던 조선시대의 석전은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총독이 관례적으로 참석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국가 수반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했던 모습이 최초로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확인됨으로써 종교적으로 기독교인이자 김창숙 성균관장과 정치적으로 대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주요 의례인 석전을 여전히 대단히 중시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한편 지난 2022년 5월 「수백 년 동안 문묘를 지켜온 수호자, ‘성균관 수복(守僕)’을 아십니까?-문화재청의 6월 말일 철거 일정 통고로 퇴거 위기에 처한 수복 집안」 기사와 「미움도, 원망도 없어요. 그리움만 남았을 뿐-65년째 성균관 생활하는 '작은 거인' 김인겸 여사」 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균관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짚어온 본지는 당시 기사를 통해 52년간 재직한 이완산(李完山, 1902-1969), 43년간 재직한 이정우(李楨雨, 1932-2012), 10년간 재직 중이던 이욱(李旭, 1966년생) 등 3대에 걸친 최근 수복의 삶에 대해 보도했었는데, 이번 영상의 맨 첫부분에서 헌관 및 제집사를 인도하는 이가 고(故) 이완산 수복임을 수복 집안 장남 이태형 대표와 현재의 이욱 수복이 확인했다.
우리 전통문화에 큰 관심을 가졌고,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았던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은 매년 봄, 가을에 봉행되는 석전에 빠짐없이 금일봉(金一封)을 하사한 내용이 본지의 전신인 <유림월보>에서 확인되는데, 심지어 1979년 10·26 사건 발생 직전인 그해 9월27일 오전 10시에 성균관 대성전에서 봉행된 ‘공자탄강 2530년 추기석전’에도 나타나며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도 헌성 명단에서 빠진 적이 없다.
근래에 유교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고위직을 지내거나 상당한 재력을 가진 유림지도자가 급감하는 와중에 ‘우리는 원래부터 이랬던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유교, 유림의 문화는 해방 후에도 상당 기간 영향력을 가졌으며, ‘팔일무(八佾舞)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중국은 과거 1966-1976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파괴하고 불태웠던 유교 문화를 5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완전하게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 서울에 위치한 성균관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등 중앙단위의 조직들은 물론 지역에 있는 향교, 서원, 유도회, 향교재단 등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는 한국 유림의 체계를 정작 유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이 크게 부러워한다는 소식은 우리의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나침반(羅針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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