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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창간 56주년 특집-유교신문 다시 보기] ①유교는 우리의 생활 자체-고(故) 조애영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초대 회장“유교는 우리의 생활 자체고, 윤리 자체라고 생각해요”

오흥녕
2025.01.07·12분 읽기·조회 84

 

 

부친 조인석 선생을 '영양군 향교 직원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조부, 부친, 조애영 여사, 조지훈 시인 등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지금도 주실마을에 보존되어 있다.

 


 

 

고향 주실마을에는 조애영 여사 일가와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첫째 오빠 조근영은 1951년부터 1956년까지 5년 2개월 동안 제2대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임했다.

 


 

 

둘째 오빠 조헌영(조지훈 시인 부친)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쳤다.

 


 

 

둘째 오빠의 차남 '청록파 시인' 조지훈 전 고려대 교수는 지조론 등을 통해 선비정신을 역설했다.

 


 

 

둘째 오빠의 차남 조지훈 전 고려대 교수의 3남이 조태열 현 외교부 장관이다.

 


 

 

세째 오빠 조준영은 문경·상주·대구경찰서장, 경북경찰국장,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등을 지냈다.

 


 

 

 

 

 

조애영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 초대 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1970년 회갑기념 출판기념회에서의 조애영 여사 모습이다.

 


 

 

여성유림으로서는 최초로 『유림월보(儒林月報)』 제57호(1973.12.25.화) 5면에 글을 게재했다.

 


 

 

 

 

여성유림회(女性儒林會)의 창립 소식이 『유림월보』 제74호(1975.5.25.일) 1면에 보도되어 있다.

 


 

 

 

 

1977년 5월23일 성균관 명륜당에서 개최된 여성유림회 창립 2주년 기념식 모습이다.

 


 

 

오른쪽부터 조애영 회장, 호영희·김정자 부회장, 손영희 총무국장이 차례대로 앉아 있다.

 


 

 

배화여고 동창들과 함께한 모습이다(출처-경북매일, 제공-경북여성정책개발원).

 


 

 

 

1988년 4월 당시 78세의 조애영 초대회장 모습이다.

 


 

 

조애영 여성유도회 초대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유교신보』 제239호(1988년 4월 1일 금)에 게재됐다.

 


 

지난 1975년 5월23일 오후 2시 성균관 명륜당에서 개최된 창립총회를 통해 발족한 여성유림회(女性儒林會)(『유림월보』 제74호(1975.5.25.일) 1면 보도)는 남성들이 주도하던 유림조직의 부녀부장 등으로 일하며 일부분의 역할만을 하던 여성유림들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유림 내에서도 보다 주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림월보(儒林月報)』 제57호(1973.12.25.화) 5면에 여성유림으로서는 최초로 「여성유림의 자세」라는 글을 게재하고, 이후에도 여성유림, 전통문화, 규방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을 통해 웬만한 남성들보다 뛰어난 필력(筆力)을 보였던 조애영(趙愛泳, 1911-2000) 여사는 유도회총본부 부녀부장을 거쳐 지금의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의 전신(前身)인 여성유림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여성유림 조직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헌신했다.

 

한양 조씨 일족이 오랫동안 거주해온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면(日月面)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의 호은종택(壺隱宗宅)에서 지난 1911년 3월5일(음력 2월8일) 아버지 조인석(趙寅錫, 1879-1950), 어머니 이호정(李鎬貞, 1874-?, 본관 진성(眞城))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조애영 여사는 부친의 영양군 향교 직원(直員, 지금의 전교에 해당함) 임명 사실이 『승정원일기』 순종 3년 기유(1909) 2월25일 조에서 확인되는데, 구한 말 성균관과 사헌부 대간을 지낸 후 낙향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3남인 조준영이 경북도경 국장임을 알던 좌익 청년들이 반말로 모욕하며 계속 괴롭히자 이를 개탄하며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첫째 오빠 조근영(趙根泳, 1896-1970)은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과 출신으로 문교부 문화국장을 지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초기에 이재욱 초대 국립도서관장이 납북되자 1951년 2월17일 제2대 관장으로 임명되어 1956년 4월까지 재임했고, 1956년 4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지금의 서울시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주차장 자리에 있던) 국립도서관을 시찰하다가 불쾌한 표정을 짓고 돌아간 후 문교부의 사퇴 압력을 받자 이선근 문교부 장관에 대한 반박문을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사퇴 직후 민주당에 입당하여 동생인 조헌영이 두 번 국회의원을 지낸 고향에서 치뤄진 1960년 제5대 총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선자에게 58표 차이로 낙선했으며, 그의 딸 조동원(1927-?)은 박준규(朴浚圭, 1925-2014) 전 국회의장과 결혼했다.

 

둘째 오빠 조헌영(趙憲泳, 1901-1988)은 일본 와세다대 영문과를 다니며 신간회 동경지회장 등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한의사로 일하며 1948년 제헌의회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고향인 영양에서 무투표 당선된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그 해 발생한 한국전쟁의 와중에 북한군에 납북되어 평양의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북한 최초의 동의학(東醫學, 우리의 한의학에 해당) 박사가 되었으며, 동의보감 국역을 주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 현재는 지난 2004년 북한 평양시에 조성된 재북인사릉(在北人士陵)에 안재홍(安在鴻, 1891-1965),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이광수(李光洙, 1892-1950) 등과 함께 묻혀 있다.

 

둘째 오빠의 둘째 아들로 청록파(靑鹿派) 시인이자 문학가로 유명했던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전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조카였고, 조지훈 시인의 막내이자 3남인 조태열(趙兌烈, 1955-현재) 현(現) 외교부 장관은 주실마을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외무고시를 거쳐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해 왔다.

 

셋째 오빠 조준영(趙俊泳, 1903-1962)은 보성고보 졸업 후 경찰 간부로 일하다가 제5대 대구시장(재임 1958년 10월5일-1959년 5월29일)과 제7대 경상북도지사(재임 1960년 5월2일-1960년 10월6일)를 지냈다.

 

그 외에도 주실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양 조씨로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병철 전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맏사위), 조동걸 국민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조동일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 조동원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조동택 경북대 미생물학과 명예교수, 조근해 전 공군참모총장, 조동택 전 경북대 의대 교수,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알려져 있다.

 

조애영 여사는 교육열이 매우 높았던 집안 분위기의 영향으로 영양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1년 배화여고를 졸업한 후 이화여전 가사과에 합격했고, 그녀의 뛰어난 영어 실력을 본 선교사가 미국 유학을 권했으나 부모와 오빠의 반대에 부딪혀 실행하지 못하고 ‘혼인하면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당시 이화여전의 교칙에 따라 경북 영천의 3대 부자로 일컬어지던 이인석(李璘錫)의 3남 이담(李潭)과 결혼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이병붕(李秉鵬), 이병립(李秉立), 이병훈(李秉薰) 등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아 키우는 동안 중앙고보 재학시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지식인이었던 남편은 아내의 사회생활을 허락하지 않아 배화여고 학원재단 기성회원 등 동창회 활동 정도만 시작할 수 있었다.

 

보수적인 남편이 세상을 떠난 1960년 이후부터 여성으로는 매우 드물게 은촌(隱村)이라는 호(號)를 가지고 여성단체 가사원 이사, 여성단체 대한어머니회 회원,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화요클럽 회원, 주부클럽 중앙위원, 한국여성문제연구소 찬조회원, 여성단체협의회 종신회원, 한국문인협회·한국신화학회·민속학·한국시조작가협회·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등으로 각종 단체에 참여했으며 시조집 『슬픈 동경』(서울신문사, 1958), 『은촌내방가사집』(금강출판사, 1971), 『한국현대내방가사집』(당현사, 1977) 등의 여러 서적과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는 한편으로 성균관여성유도회중앙회에도 끝까지 참여하다가 지난 2000년 8월25일 오전 9시15분 큰 아드님인 이병붕(李秉鵬)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 재직 중인 삼성서울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래의 글은 『유교신문』의 전신인 『유교신보(儒敎新報)』 제239호(1988.04.01.금) 3면 오른쪽에 ‘사랑방’이라고 하여 당시 생존해 계시던 원로 유림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던 코너의 일환으로 게재되었다.

 

 

 

유교(儒敎)는 우리의 생활(生活) 자체(自體)

 

 조애영(趙愛永) 여성유도회 명예회장

 

 

 

이번 본보의 사랑방 손님으로는 1972년 성균관 교화분과 부녀부장으로 유교와 인연을 맺으신 후 여성유림회(女性儒林會)를 창립하시고, (1975년부터 1978년까지) 3년간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여성유도회 명예회장으로 계시는 조애영 여사를 모셨다.

 


 

- 안녕하십니까.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반갑습니다. 그동안 여성유교인의 활동을 위해 여러 면에서 애써오셨는데 이렇게 특별히 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으신지요?

 

☛ 실제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부녀부장을 맡고부터이지만 조부(조승기(趙承基, 1836-1913),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께서 유림으로 독립운동을 하셨고, 부친(조인석(趙寅錫))께서도 한말 그 당시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던 성균관에서 강사를 맡고 계셨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가(儒家)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 평소 유교에 대해 가지고 계신 신념이나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우리 유교의 당면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유교는 여타의 종교나 사상처럼 인위적이고 강요된 형태의 의식이 아닌 우리의 생활 자체고, 윤리 자체라고 생각해요. 세계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하는 길은 자기 것을 소중히 계승하고 새롭게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고, 특히 조상이 없는 나, 부모 없는 내가 있을 수 없다는 뿌리정신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지금 전세계가 안고 있는 정신적인 빈곤을 해결하는 유일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유교가 여성에게는 다소 폐쇄적으로 느껴지기 쉬운데 여성유도회 일을 하시다 보면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으셨을 것같은데 기억나는 일이 있으시면 여성의 사회참여 측면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 여성유도회 발족 당시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지요. 부녀부장을 맡기 전에 석전을 참관하려고 대성전을 기웃거리다 여자는 안 된다고 거절당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또 어떤 면에서는 진실된 유교가 잘못 이해한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는 부분이 있을 뿐, 여성은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여성들 스스로도 끝없이 자기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믿어요. 사실은 사회발전 측면에서도 보면 남성보다 여성의 역할이 더 중대하고, 그래서 여성이 깨어 있어야 하죠.

 

 

 

-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규방문학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십시오.

 

☛ 규방문학은 당시의 여성이 역사에 참여하는 한 방법이요, 삶의 기록입니다. 남성의 그늘에가린 존재가 아닌 역사 속의 증인으로 여인들의 삶과 애환을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찾고 계승하고 싶을 뿐입니다.

 

 

 

- 끝으로 유교의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평소에 가지고 계신 생각이 있으시다면?

 

☛ 언급했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사회의 구조나 형태, 사고방식, 관습 등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시대는 변한다는 것이지요. 유교가 활동화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시대 조류에 맞게 근원사상을 지키면서 방법상, 조직상, 과감한 자기 변혁을 스스로 수행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유림이 더욱 새롭게 뜻을 다지고 합심해야할 것이며, 그 선두 역할을 유교신보(儒敎新報)가 맡아주리라고 기대가 큽니다.

 

 

 

-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감사합니다. 유교신보의 발전을 빕니다.

 

 

 

 

 

※ 조애영(趙愛永) 여사는 1931년 배화여고를 졸업하시고, 광주학생의거에 참가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으며, 성균관 교화분과 부녀부장, 초대 여성유림회 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여성유도회 명예회장에 재임 중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