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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동정

典校인터뷰 - 忠州鄕校 鄭泰益 典校

“現代的 儀禮 硏究·普及 절실하게 必要”<BR>儒敎家에 태어나 書藝를 통해 儒敎 經傳 學習

김우철 기자
2013.12.01·7분 읽기·조회 19

 

 

정태익 전교

 

▶ 전교님의 주요 경력과 유림으로서 최근 활동사항은 무엇입니까?
▷ 유림에 입문을 하게 된 것은 선친께서 향교 장의를 역임하시는 등 전형적인 유학 가문이었기 때문에 향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성장한데다 어릴 적부터 유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 초반부터 서예에 심취해서 서예를 열심히 하다보니까 유교 경전 명구를 많이 접하게 되어 유교에 절대적인 친근감이 있었고 지역 유림들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퇴직 후 자연스럽게 향교를 나오게 되었다. 

본인은 지난 3년간 전교를 했었으며 11월4일부터 재임을 하고 있다. 항상 배우고자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덕인지는 몰라도 그간 전교직을 수행해 오는 데는 큰 막힘은 없이 해왔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전교로서 그간의 업무 수행 경험에 관련하여 생각해 본다면, 본인이 전교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서예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나름대로 생각이 되고, 이밖에도 전교직을 맡아 그간에 크게 막힘이 없이 원만이 해 올수 있는 것은 과거에 생업으로 가졌던 직장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에서 다양한 사건을 접하면서 겪은 많은 사회적 경험이 전교로서 합리적인 사리분별에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충주향교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 바랍니다.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57호인 충주향교는 신라 신문왕 2년(서기682년)에 국학을 세웠다는 기록에 비추어 그 무렵 함께 지방 학교로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주, 부, 군, 현의 이름을 고칠 때 중원경이 충주로 개칭되었는데 성종 2년(서기983년)에 지방에 12목을 둘 때 충주는 12목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때 12목에는 경영학박사, 의학박사가 각 1인을 파견하였으므로 이때 충주에도 박사들이 파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인종 때인 서기 1123-1146년 기간에도 각 지방에 학부를 세워 지방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므로 이때에도 충주에 향학을 세웠을 것으로 보이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기록상으로는 조선 태조7년 (1398년)충주향교가 충주시 안림동 879-1에 창립되었으나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인조7년(1629년) 3월에 지금의 위치 충주시 교현동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대성전, 신무문, 명륜당 8간, 풍화루 2층 6간이 있었으나 누차에 걸친 병화로 전부 소실되었다. 대성전, 명륜당 등 현재의 건물은 광무 원년(서기 1897년 )중건하였으며 그 뒤에도 대성전을 비롯해서 동·서무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 충주향교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향교사업은 무엇입니까?
▷ 유교문화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 유교문화 확산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할 향교가 아무 기여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뜻을 이종배 충주시장에게 건의하여 일정한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다. 그 결과로 충주시청으로부터 연간 향교에서 2000만원, 유도회에서 2000만원을 지원받아 중용반, 논어반,  예절반, 서예반과 기초 한문반 등을 개설하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편 향교 환경 개선에 있어서는 상당히 자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센터의 협조로 홍살문에서 외삼문까지의 도로를 적색으로 특설해서 영역 표시가 제대로 드러나게 하고, 회의실 커튼에 본인의 자필로 논어구를 넣어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향수 장의와 같이 유림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향교를 사랑하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기탁하거나 향교에 여러 가지 물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관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절교육에 있어서는 향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지역 어린이집을 직접 방문하여 인성교육과 예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유도회에서는 8명으로 조직된 강사들이 관내 각 중·고등학교를 출장을 하여 충효교육을 하고 있다. 기타 봉사 활동으로는 본인이 노인복지관을 출장하여 서예지도를 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전통혼례를 적극 권장하고 있고 그간에 여러 쌍이 충주향교에서 혼례를 치렀다. 특히 이종인 장의는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지역 주민을 위해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고마운 분이다.

 

▶ 유림지도자로서 유림권에 당부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 우선 성균관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럽다. 사태의 수습에 있어서도 실망스럽기 한량없다. 서로 이의만 있고 합의나 화의는 없으니 말이다. 장정 개정에서 부터 하루 속히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데는 당초부터 이의가 없었으면서도 방법과 절차상의 문제에 있어서 지엽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회의소집 절차 문제 같은 것을 가지고 왜 시간을 끄는지 그 진의를 알 수가 없다. 머리를 맞대고 충정을 발휘한다면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왜 이리 시간을 끄는지 참으로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쪽이 있다고 하는데 성균관 입장에서 보면 다 성균관 대내인들이 아닌가. 부디 신청인과 피신청인 측이 만나서 합의하여 절차상의 다소 문제가 있어도 넘어가야 한다. 지금 성균관 실무진이나 이의를 갖는 쪽이나 모두 하루속히 합의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균관이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예(禮)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례(四禮) 중 상·장례에 관하여 본다면 요즘 상례는 과거와 같이 각 가정에서 장례절차를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모두 장례예식장에서 상조회라는 조직의 도움으로 치른다. 그리고 매장보다는 화장을 하고 그밖에 자연장, 수목장 등의 장례법이 활발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장례에 따른 제례절차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장례제도가 변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이에 따라 어차피 장례문화가 변하는 마당에 성균관이 적극적으로 상황에 맞는 제례절차와 축문 등을 연구하고 제작해 주어야 한다. 비록 화장이나 납골당 등 신종 장례절차가 성균관이나 우리 유교계가 바라거나 장려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시행하고 있는 이상 과거만을 고집하고 방관하는 것은 옳은 태도 아니라고 본다. 

더불어 향교 직제를 현대적 실정에 맞게 개정하길 바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교화장의, 연락장의는 그 명칭부터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교화장의란 용어자체가 이 시대에 바람직한 용어라 할 수 없고 연락장의 또한 고무신 신고 발로 뛰든 시대의 용어 같아 첨단 시대에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