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성의순 성균관 부관장“앞으로도 성균관, 유교, 전통문화 속에서 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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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순 성균관 부관장과의 인터뷰는 명륜당 마루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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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 중매한 고모를 모시고 결혼30주년인 1995년에 창덕궁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다.
올해 5월 27일에 세 번째 여성부관장으로 임명되었다.(오른쪽은 손진우 성균관장)
부관장 고유하는 날에 든든한 지인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명륜당 앞 은행나무는 언제나 찾아와도 반겨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못 말리는 할머니 유림' 성의순 부관장은 '성균관이 제일 좋은 놀이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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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의 활동 내용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었다.
성균관에 출입하기 시작한 지난 2020년부터 하얀 머리카락과 웃는 얼굴로 사무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들어오는 ‘할머니 유림’ 한 분이 계셨다. 다른 동료를 만나러 오는 방문이었으나 연세도 꽤 많은 분이 언제나 공손하고 밝은 모습이라 누구신지 궁금했는데, 지난 11월24일 명륜당 마루에 앉아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질문했다.
▶‘할아버지 유림’이 많이 오시는 성균관에서 ‘할머니 유림’은 굉장히 드물고 때로는 신기하기도 합니다. 먼저 본인을 소개해주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성의순(成義順)이고, 1938년생으로 현재 한국나이로는 85세입니다. 본관은 창녕이고, 고향은 경기도 양주이며, 10남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우리 또래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전쟁의 피난 와중에 오빠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남들보다 2년 늦게 국민학교를 졸업하며 서울에서 어렵게 살다가 군대에서 장교로 근무한 큰오빠가 ‘이제는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 너도 해봐라’고 격려해줘서 아득바득 학업을 이어가며 1959년 숙명여대 상학과를 입학해서 졸업하고 1963년 같은 대학 대학원 경제학과를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1965년에 졸업했습니다. 원래는 박사과정도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외부에서 새로 오신 총장님을 둘러싸고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이 굉장했는데, 저는 조교·강사 시절이고 전체 교수회에서 제가 속한 정경대 교수들이 반대파에 속했었고 그 총장님이 반대파를 전부 학교에서 내쫓아서 모교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물여덟 먹은 노처녀가 결혼을 안 하고 있으니 큰아버지, 부모님 등 어른들이 노발대발하시며 독촉하셔서 고향이 같은 남자를 소개받아 결혼했고, 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아 키웠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한국은행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외부 강의도 가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해서 내근 대신 외근을 했고, 그래서 경제기획원 자료관리과에서 별정직 6급으로 1993년에 정년퇴직했습니다. 퇴직 후에도 급여를 좀 줄여서 다시 근무를 해달라고 해서 2000년초까지 일했습니다.
▶예전에는 여성이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아휴, 그렇죠. 남자분들이 우리 더러 ‘자기네들 일자리 잡아먹는다’고 대놓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한창 경제성장기였는데도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욕구는 강했으니까요. 그래서 임신을 하고도 출산 바로 직전까지 일했고, 육아휴직 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제 일을 했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평해봐야 도움이 되는 게 없었으니까요.
▶잘은 모르겠으나 느낌으로 굉장히 부지런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신 것같습니다.
친정어머니를 닮아서 뭐라도 해야 하긴 합니다. 집안에서는 가정 일을 하느라 드라마 볼 시간이 없고, 밖에 나와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 퇴직 후 집에 있는 남편이 맨날 한 소리 하긴 합니다. 이왕 사는 것인데 부정적으로 생각해봐야 나만 손해인 것같아 매사 긍정적으로 보려 하고,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춰서 꼭 필요한 건 계속 배우려고 해서 제 힘으로 이메일도 보내고, 카톡도 하며, 좋은 분들과 자주 만나고 얘기 나누려고 합니다. 자원봉사활동도 20년 넘는 기간동안 계속해 와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 이재정 전 경기도교육감 등의 표창장도 받았는데, 개인적인 봉사활동은 별도로 하더라도 1365 사이트에서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카운팅된 공적 봉사활동만으로도 7700시간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활동적이셔서 또래 할머니들과는 많이 다르신데, 그렇게 사시면 시기나 질투, 미움 등을 받지는 않으십니까?
왜 그런 게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런 걸 모두 의식하면 아무 것도 못하니 그냥 좋게 생각하고, 내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묵묵하게 해왔습니다. 제가 정신여중·고를 다녔는데 지금은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에 있지만 그때는 서울 종로5가에 있었고 선교사들이 계시면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사춘기였던 그 시절 선교사님들의 말씀 중에 ‘사회에 얼마나 환원했는가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저게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 그 말이 생각나고 되뇌어져서 제 삶에도 영향을 미치더군요. 남편과 애들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데, 계속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이 바로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균관에는 언제, 무슨 계기로 출입하신 건지요?
어느 날 우연히 경복궁을 갔는데, 선생님 한 분이 그 앞에서 제사상을 강의하셨고 내용이 너무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경복궁관리사무소를 찾아가서 ‘저 분이 누구시냐?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졸라서 이름과 연락처를 받았는데, 김득중 선생님이셨고 그 분이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예절에 대한 강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셔서 한참 동안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강사셨던 손영희 부관장님을 알게 됐고, 국가공인실천예절본부의 최창학 선생님과 우계문화재단의 성기웅 대진대 교수님 등도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과 “놀아도 성균관에 가서 놀자”고 얘기하다가 여성유도회중앙회의 명덕학당 15기로 들어가서 유교 일반, 다례 등을 배웠는데, 당시 입학동기들이 민해원 여성유도회중앙회장, 김옥란 여성유도회중앙회 부회장 등입니다.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그걸 내세우거나 군림하고 싶지 않아서 무슨 직책을 맡지도 않았는데, 이혜자 회장님이 재임하실 때 계속 부탁하셔서 홍보부장을 했었습니다.
김정 부관장님이 성균관에 오시기 전에 알았던 인연으로 석전교육원장으로 오신 후 저에게도 도와달라고 하셔서 석전교육원 일도 좀 했었습니다.
▶이번에 책을 한권 내셨다고 하던데, 무슨 내용입니까?
제목은 『고결한 선비 우계 성혼을 만나다』(도서출판 글벗)라고 붙였는데, 문묘에 배향된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우계문화재단 교육이사로 활동하면서 알게 되고 발견한 자료들과 제가 해왔던 활동 등을 묶어서 만들었습니다.
글재주가 부족하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것같아 쑥스러워 피하려 했는데, 여러 지인들께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 시점에서 지나온 시간들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것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해 주셔서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해온 활동 중에 상당수는 누가 자리를 마련해 줘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제가 관계자, 공무원, 정부와 지자체 등을 상대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했는데, 앞으로 이런 방면에 관심을 갖고 뭔가를 해보려는 분들이 저보다 좀 덜 흔들리며 제대로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해 온 활동들에 대한 자료가 필요한 분들이 연락주시면 아낌없이 모든 자료를 제공해드릴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가실 예정이십니까?
일단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는 계속 누군가를 만나고,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는 장승배기역 옆의 집이 재개발조합에 수용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는데, 마침 성균관과도 가까운 이화장(梨花莊,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1번지에 위치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로 사적 제497호로 지정됨) 근처의 집을 구입할 수 있어서 다음달인 12월에 이사올 예정입니다.
원래 출판사의 사무실로 쓰던 곳인데 지하 1층에 꽤 공간이 있어 이사 후에는 그곳에서 제가 그동안 해온 각종 전통문화, 예절 등의 강의와 봉사활동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성균관 부관장과 여성유도회중앙회원 등 성균관과 관련된 부분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생활하시며 좋은 영향력을 전파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바쁘실텐데 너무 두서없는 얘기를 많이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0년 이후의 제 삶은 오로지 성균관, 유교, 전통문화 등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자했습니만 아직도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제가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좀 더 해야 할 역할은 어떤 것인지 조언해 주시면 참고해서 인생계획에 반영하겠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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